`대박 드라마`를 찾기 힘든 요즘 시청률 40% 드라마를 품은 연출자의 기분은 어떨까. 이런 궁금증을 안고 14일 오후 여의도 MBC 본사를 찾았다. MBC `해를 품은 달`의 김도훈 PD를 만나기 위해서다. 마지막 촬영이 끝나고 만 하루가 지났지만 김 PD는 마지막 후반작업에 한창이었다. 김 PD는 "시원한데 허탈하기도 하다"며 종영 소감을 전했다. 인기를 실감하냐는 질문에는 "산속에만 있으니 실감을 못 한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이내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촬영팀 차량에 붙은 드라마 스티커를 보고 톨게이트 직원이 이것저것 물어봐서 한참을 붙들려 있던 에피소드를 들려주며 쑥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연출자로서 `해를 품은 달`은 뿌듯할 만한 성적을 냈다. 지난 1일 수도권 기준 시청률 45%를 넘겼고, 시청률 외에 탄탄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판타지 사극의 가능성도 보여줬다. 김 PD는 "사람들이 보고 싶어하는 것을 작가가 잘 잡아냈고, 배우들이 놀라운 집중력으로 표현한 것 같다"며 "난 가교 역할을 했을 뿐"이라고 자신을 낮췄다. 그는 처음에는 이렇게까지 잘 될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다고 했다. "초반 아역 분량이 많았는데 아역들이 서로 죽고사는 내용이라 어떻게 만들어가나 걱정했죠. 아역하면 소설 `소나기`식의 감성이 나오기 마련인데 이 작품은 그런 감성이 어색해 보일 수 있어서 잘못 만들면 망할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고민 끝에 그가 택한 방법은 아역의 이야기를 성인의 축소판처럼 그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진한 감정을 겪어본 적이 없는 아역들이나 아역과 일한 경험이 없는 그에게 모두 어려운 도전이었다. "아역들 모두 욕심을 많이 냈어요. 그렇지만 경험이 없다 보니 당황해 했고 처음에는 캐스팅을 잘못한 게 아닌가 고민도 했죠. 저도 아역이랑 어떻게 대화해야 하나 걱정했어요. 계속 애들 입장에서 이야기를 하려고 했죠." 연출자로서 중점을 둔 것은 순정이었다. 김 PD는 "10대와 60대 모두 즐길 수 있는 코드가 순정이었다. 그래서 소품, 분장, 얼굴 샷 하나하나 예쁘게 만들려고 했다"고 밝혔다. 동시에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사극을 만들기 위해 초반 어른들의 이야기는 일반 사극처럼 무게 있게 찍었다. `성균관 스캔들`과 `동이`의 중간 지점을 찾고자 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아역들의 열연으로 드라마는 초반부터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 냈다. 그러다 보니 성인 배우들의 부담감은 절로 커졌다. 4부가 방송되던 날 일산 MBC에 모여 두 번째 대본 연습을 할 때 `초긴장 상태`로 새벽 3시까지 할 정도였다. "그런 모습을 보니 더 걱정되더라고요.(웃음) 당시에는 준비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그냥 너희 안의 모습을 하나씩만 끄집어 내서 하라`고 말했어요. 어차피 배우들을 캐스팅할 때부터 캐릭터와 비슷한 요소가 하나씩 있었기 때문에 캐스팅한 거였거든요. 그러니 좀 나아지더라고요." 김 PD는 `해를 품은 달`에서 화면을 꽉 채우는 클로즈업을 유독 애용했다. 그는 "배우의 감성에 몰입하기 위한 이유도 있지만 겨울이라 풍경이 황량해 그림이 안 좋았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여기에 "아이들이 나오다보니 피부가 좋아서 자주 써도 그림이 예뻤다"며 "성인 배우들은 후반작업을 많이 했는데 파업에 들어가면서 제대로 작업을 못해 아쉬웠다"고 돌아봤다. `해를 품은 달`은 인기 외에 김도훈 PD에게 잊지 못할 경험을 선사했다. 그는 지난 5일 방송과 파업 참여라는 기로에 섰다 결국 촬영장 철수를 결정했다. 김 PD는 "내 인생에서 가장 긴 하루였다"고 털어놓았다. "처음에는 드라마를 정치적으로 이용해 먹는다는 오해를 받을 것 같아 빠지기 싫다고 했어요. 그렇지만 이런 분위기에서 촬영을 강행하면 그에 따른 부담감이 또 있었죠. 회사 안에서 배신자처럼 여겨질 수도 있고 어떤 게 대의일까 고민했습니다. 고민 끝에 드라마국 노조원 PD총회의 대의를 따르기로 했죠." 후폭풍은 컸다. 드라마는 2회 결방했고, 시청자들의 아쉬움 역시 컸다. 결국 그는 이튿날 밤 촬영장에 복귀했다. "파업의 순수성을 알리기 위해 동참했지만 시청자들한테 민폐를 끼치는 것 같아 부담감이 말도 못했어요. 영구 결방하면 노조가 비난을 받을 수도 있었죠. 촬영장 복귀로 `박쥐`라는 손가락질을 받았지만 처음부터 각오했어요. `어떤 선택을 하든 욕을 먹을 수밖에 없겠구나. 그래서 더욱 내 길을 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트위터에서 밝힌 것처럼 "같은 상황이 돼도 똑같이 결정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면서 극 예술에 관심이 많았던 김도훈 PD는 1996년 MBC 드라마국에 입사했다. 2008년 `스포트라이트`로 메인 PD로 데뷔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작년 `로열패밀리`를 만날 때까지 3년간 와신상담의 날들이 이어졌다. 비제작국에서 1년을 보내기도 했다. "조직생활의 쓴맛을 다 봤죠. 스스로도 실망하고 이 일을 그만둬야 하는 게 아닌가 고민했어요. 그러다 위에서 시켜서 `로열패밀리`를 하게 됐는데 처음에 대본이 너무 어둡고 어려워 `또 망하면 어떡하지` 걱정했어요. `로열패밀리`로 인정을 좀 받고 상황이 나아졌는데 또 이걸 하라고 집요하게 시키더라고요. 반협박으로 시작했어요.(웃음)" 김 PD가 `해를 품은 달`을 두고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사연 없는 날이 없었다"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그렇게 `로열패밀리`가 끝나고 불과 4개월 만에 촬영 준비에 들어갔다. `계백`과 `무신`으로 사극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동분서주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때 하소연을 하던 통로가 트위터였다. 그는 촬영이 한창일 때도 트위터로 직접 작품 관련 소식을 알리며 대중과 소통했다. 그는 "하소연하듯 썼는데 누리꾼들이 찾아와 주더라"며 "고마움의 답례 차원에서 트위터로 작품 이야기를 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의 바람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드라마를 만드는 것. "예전에는 내가 만들고 싶은 드라마가 무엇일까 생각했는데 비제작국에서 매일 TV를 보다 보니 사람들이 보고 싶어하는 게 이런 거였구나 하는 걸 느꼈어요. 시청자가 원하는 곳에서 출발하는 게 내 임무라는 걸 깨달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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