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연극은 1908년 신극을 시작으로 106년을 이어오고 있다. 포항연극은 올해로 100주년을 맞이하게 됐다. 이에 에 이어 포항연극 100년사를 소개한다. ◇포항연극의 시작 1914년 포항동, 학산동, 두호동 분동이 합쳐져 포항면으로 승격되면서 축하공연으로 전통연희를 비롯, 농악놀이, 판소리 등 연극적인 유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1921년 청년들은 음악회, 연설회, 연극을 선보이며 기금을 조성해 없는 사람들에게 나눠줬다. 1922년 영일청년회 유학학생회가 조직돼 동빈동 부두 근처에 있는 가정집에서 독립정신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연극을 선보이기도 했다. 1930년대 중반부터는 포항교인들이 앞장을 서 청년들과 함께 밴드를 조직해 음악과 간단한 연극을 선보이며 문화예술을 부흥시켰다. 이때 등장하는 인물들이 포항문화예술의 개척자로 대표적으로 ‘인간상록수’로 추앙받는 재생 이명석 선생이다. 1930년대 후반, 일본의 무단정치가 심해지면서 우리나라 문화활동이 위축되기 시작했다. 1945년 해방 전까지 서울에서는 일본이 시키는 연극만 하면서 친일연극이 판을 치는 상황 속에서 옳은 연극이란 없었고 문화활동이 완전히 말살됐다. 포항의 연극은 해방 후 기지개를 폈다. 1947년 남부초등학교 학예회에서 선보인 신영식 선생님 작품 ‘눈 내리는겨울밤’을 시작으로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연극 붐이 일어났다. 1951년 동지중, 포항여중에서는 예술제가 열렸고 1956년부터는 해마다 연극을 선보였다. 포항수산고 학생들은 포항, 감포, 구룡포, 강구, 축산, 영해, 후포, 울진을 찾아 어민들을 대상으로 수산고 지원을 받기 위해 순회공연을 진행했다. ◇포항의 최초 극단 ‘은하극장’ 포항에 본격적인 현대 연극이 접목되는 시점은 1957년 KBS이동방송국 시절. 강익수, 이광재 등 유명한 아나운서들이 이동방송국 차량에서 라디오 드라마를 진행했다. 당시 라디오에 대한 호기심이 많던 황선택씨의 주도로 취미 연극을 시작했다. 김삼일 선생은 1963년 KBS 성우로 뽑혔다. 1년 뒤 성우들이 모여서 극단을 만들어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방송극을 시작했다. 방송극을 하다 지역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한 끝에 ‘극단 은하극장’을 만들었다. 이 극단은 1964년부터 시작해 올해 50년이나 된 역사가 깊은 곳이다. 은하극장 멤버들은 첫 공연 당시 배우 7명, 손님 4명이였던 적도 있었다고 한다. 애린주차장 자리에서 첫 공연 막을 올린 최동주 作, 백야 연출 ‘비와 대화’는 김삼일, 전용치, 공설자, 강신홍 등 7명이 출연했다. ◇‘인간상록수’ 재생 이명석 선생 당시 포항문화원장이던 재생 이명석 선생이 은하극장 첫 공연 축사를 하면서 울부짖었다. “왜 더 손님을 데려오지 않았느냐”면서 “연극을 해서 포항 문화발전을 위해 좀 해볼려고 하는데…”라고 호소했다고 한다. 연기자들도 당시 무대 뒤에 울먹였다고 한다. 그 당시 포항은 인구 5만 5000여명으로 ‘문화 불모지’라 불렸다. 김삼일 선생은 “포항문화예술이 이토록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이명석 선생의 지원, 포항문화원의 힘이 컸다”고 말했다. 그는 이명석 선생의 도움으로 포항문화원 사무국장을 맡으며 그 공간을 연습과 공연장으로 사용했다. 또 포항문화원에 책과 작품집, 전 세계 연극 역사책을 읽으며 연극에 대해서 자연스레 공부했다. 이명석 선생이 “너희가 지금 하는 일은 지금은 작고 보잘것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중에 보면 장대하게 클 수 있다”면서 “신념을 버리지 말고 계속 하라”고 힘을 주었다. 김삼일 선생은 “이명석 선생을 그 당시 만나 정말 감사하다”면서 “처음부터 포항 연극은 사람을 잘 만나 찾아 들어간 것이다. 장소도 도서관과 문화원을 겸한 포항문화원에서 연극을 한 것도 좋은일이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1970년대를 거쳐 본격적으로 연극이 시작됐지만 관객이 많지 않아 어려움이 있었다. ◇연극계 대부 김삼일 선생의 ‘끝없는 도전’ 김삼일 선생은 1983년 정춘금 포항시장을 찾아가 포항시립극단을 만들어주길 요청했다. 당시 우리나라에는 국립국단을 제외하고 시립극단은 존재하지 않았다. 포항이 처음으로 시립극단을 꾸려 시민회관 안 무대를 확보해 연습도 하고 책도 읽었다. 포항시립극단이 의의가 있는 것이 서울, 광주, 대구, 전주, 인천, 부산 등 전국 각지에서 포항을 본보기로 삼아 1990년대 후반 이후 극단들이 생겨나기 시작됐다. 현재 포항시립예술단은 교향악단, 합창단, 연극단으로 구성됐으며 김삼일 선생은 지난 2012년까지 포항시립연극단 상임연출가로 활동했다. 포항시립연극단은 ‘공짜표와의 전쟁’을 선언하고 지난 2009년부터 유료공연을 선언하고 세계명작 세익스피어 작품과 지역의 향토적인 작품들을 발굴해 선보였다. 3년만에 유료관객 4만5000명을 확보하고 수입 1억6000여만원을 끌어올렸다. 무료공연을 할때는 중앙상가 실개천에서 초대권을 뿌려도 100여명도 오지 않았지만 유료공연일때는 오히려 많은 관객들이 찾아오는 등 1년에 120일을 무대에 서는 굉장한 일을 해냈다. 포항에 연중 120일이 공연이 있었다는 점으로 더욱 의미가 깊다. 김삼일 선생은 “포항에서 계속 연극을 하고 있다는 것을 시민들에게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포항연극의 전성기 1983년 전국연극제가 창설 되면서 각 시도대항으로 포항시립극단이 경북대표로 출전하게 됐다. 첫 회에 나가 여자연기상을 수상하는 수확을 얻고 이 후 1985년에는 차범석 作, 김삼일 연출 ‘대지의 딸’로 대통령상을 수상하고 연기자 이휘향씨도 여자연기상을 수상했다. 1989년 차범석 作 ‘산불’로 연출상, 문화부장관상, 여자연기상 등을 거머쥐었다. 1993년 차범석 作, 김삼일 선생의 제자인 백진기 연출로 ‘청개마을의 우화’ 작품을 선보여 연출상, 문화부장관상, 여자연기상 등을 수상해 전성기를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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