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제46대 문성왕 17년(855) 지금의 경주 남산 창림사에 삼층석탑을 건립하면서 그 조성 내력을 적어 봉안한 발원문 실물이 발견됐다. 대한불교 조계종 산하 불교문화재연구소(소장 미등 스님)는 `한국의 사찰문화재 일제조사 사업` 과정에서 용주사 효행박물관이 보관 중인 `국왕경응조무구정탑 원기`(國王慶膺造無垢淨塔願記)를 발견했다고 지난 28일 말했다. 정밀조사 결과 이 발원기는 문성왕(재위 839-857)이 대중(大中) 3년(855)에 탑을 세우면서 납입한 금동판 형태의 발원문으로 밝혀졌다. `경응`(慶膺)은 문성왕의 생전 이름이며 무구정(無垢淨)은 통일신라시대에 탑을 세우는 근거가 된 불교 경전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의미한다. 이 발원기는 세로 22.4cm× 가로 38.2cm에 두께 0.08㎝의 순동에 금을 입힌 판형이며, 앞뒷면에 탑을 건립하게 된 배경과 발원 내용, 조탑(造塔)에 관여한 인물들을 기록했다. 뜻밖에도 이 발원기는 1824년 석공(石工)이 경주 남산 창림사 삼층석탑을 무너뜨릴 때 무구정광다라니경과 함께 발견된 것이다. 당시 금석학의 대가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1786-1856)가 그 글자를 그대로 모사해둔 바로 그 실물로 드러났다. 김정희가 베껴 적은 이 발원기는 조선총독부가 경주 남산 일대 불적(佛蹟. 불교유적)을 조사하고 그 성과를 묶어 정리한 보고서 `경주 남산의 불적`(1940년)에 수록됨으로써 세상에 알려졌지만, 그 실물은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연구소는 이번 조사에서 확인한 결과 효행박물관 보관품과 추사가 말한 창림사 석탑 발원기의 글자가 내용이나 체제, 서체 등이 모두 동일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이 발원기는 경기 화성 용주사(龍珠寺) 말사인 이천의 영원사(靈源寺)에서 1968년 대웅전을 해체하다가 기단에서 발견된으로 드러났다. 이 발원기는 발견 이후 줄곧 영원사에 비장(秘藏)되다가 지난해 용주사 효행박물관에 기탁됐다. 영원사는 조선후기 명문거족인 안동김씨의 원찰(願刹)로 1827년 김조순(金祖淳)이 시주함으로써 중건됐다. 연구소는 "김조순의 아들 김유근은 김정희와 석교(石交)에 비유될 정도로 돈독한 우정을 나눴다"면서 "이런 점을 고려할 때 1824년 창림사 삼층석탑에서 출토된 무구정탑원기는 김정희를 통해 김조순 일가로 들어갔다가 1825년 영원사를 중창할 때 대웅전 공양구로 기단에 매납(埋納)된 것"으로 추정했다. 이 금속판은 분석 결과 순동(Cu), 금(Au), 수은(Hg) 등이 검출됨으로써 아말감수은기법으로 동판에 금을 입힌 것으로 밝혀졌다. 이번에 발원기에서 확인된 글자는 그 윤곽을 따라 그리는 쌍구법(雙鉤法)으로 만든 것으로 드러났다. 연구서는 이런 기법이 염거화상탑지(844년), 황룡사 구층목탑 찰주본기(872년), 중화3년명 경통(883년) 등 통일신라 동판에 글씨를 새길 때 즐겨 사용하던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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