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매일신문=민영일기자]반도체 산업 연구·개발(R&D) 인력의 `주52시간 예외` 조항을 두고 표류했던 반도체 특별법의 국회 논의가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그동안 법안에 반대하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최근 `실용주의`를 강조하며 수용 가능성을 내비쳤기 때문이다.반도체 특별법을 `근로기준법을 무력화하는 악법`이라고 비판해 온 노동계는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다. 양대 노총은 `자본의 청부 입법 추진`, `특정 기업들의 해묵은 민원 해결을 위한 꼼수`라며 즉각 폐기를 촉구했다.2일 국회·노동계 등에 따르면 민주당은 3일 이재명 대표가 주재하는 `반도체 특별법 정책 디베이트(토론)`을 열어 법안에 대한 당론을 조율할 계획이다. 이날 토론회에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 관계자와 노동조합 관계자가 참석해 반도체 분야의 주 52시간제 예외 적용 문제를 놓고 토론에 나선다.재계가 지속적으로 요구해 온 반도체 특별법은 반도체 연구·개발 노동자들이 노사 서면합의로 주 52시간 상한제를 초과하는 별도 기준을 적용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재계와 여당은 반도체 산업의 특성을 고려해 초과 근무 예외를 둬야 한다는 입장이다. 기술 경쟁력 확보를 위해 R&D 업무에 매진하려면 노동시간 유연화가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반면 노동계와 야당은 R&D 업무가 반도체 업종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현행 특별연장근로제로도 충분하다고 반대해 왔다.그러나 최근 다수당인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법안 수용 가능성을 내비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이 대표는 신년 기자회견에서 "(반도체 특별법에 대한) 기본적인 입장은 실용적으로 판단하자는 것"이라면서 "토론을 해보면 일정한 합의점에 근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재계에서는 대만 반도체업체인 TSMC의 사례를 반도체법 찬성 근거로 들고 있다. 삼성전자는 `DS 부문 연구개발 인력 근로시간 유연화 주장 검토` 보고서에서 `세계 1위 반도체 파운드리 업체인 TSMC는 주70시간 근무가 일반적`이라고 주장했다.노동계는 장시간 노동이 반도체 산업의 위기 극복을 위한 방안이 될 수 없다며, 핵심 인력의 유출을 초래하는 등 장기적으로는 산업 경쟁력을 더욱 약화시킬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한국노총은 "반도체 특별법은 특정 산업·직군 노동자에게 노동시간 적용에 대한 예외를 허용함으로써 노동조건의 최저 기준을 법정화한 근로기준법을 사실상 무력화시키는 악법 중의 악법"이라고 밝혔다. 민주노총도 "반도체 디베이트는 민주당 집권 시나리오에 따른 보수로의 회귀"라면서 "자본의 청부 입법 추진을 당장 멈추라"고 강조했다.일각에선 노동계를 대변해 오던 민주당의 입장 변화를 두고, 조기 대선을 겨냥한 이 대표가 `우클릭` 행보를 본격화하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국노총은 "(신년 기자회견은) 표를 위한 우클릭을 마다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양대노총은 반도체 특별법 토론회가 열리는 3일 국회 앞에서 법안 철회 촉구 기자회견을 진행할 예정이다.다만 민주당 내에서도 반도체 특별법 `노선 변화`에 대해서는 아직 이견이 있는 상황이다. 현행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은 주 40시간이 기본이며, 최대 12시간 연장근로가 가능하다. 불가피한 사정이 있을 경우에는 근로자 동의와 고용부 장관의 인가를 받아 특별 연장근로제도를 통해 근로시간을 연장할 수 있다. 예외 사유는 △재해·재난 △인명·안전 △돌발상황 △업무량 폭증 △R&D 등이다.박홍배 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1~11월 특별 연장근로 신청 건수(6112건) 중 R&D 신청은 26건으로 0.4%에 그쳤다"며 "반도체업계에서는 경쟁력 강화를 위해 R&D 인력의 주52시간 상한제 특례가 필요하다고 하나 경쟁력 강화와 근로시간의 상관관계는 떨어진다"고 말했다.같은 당 이용우 의원에 따르면 최근 2년간 반도체 기업이 연구개발을 이유로 고용부에 특별연장근로를 신청하고 승인받은 총 23건 중, 22건은 삼성전자가 신청한 것이었다. 반면 지난해 사상 최대 매출과 영업이익을 기록한 SK하이닉스는 특별연장근로를 한 건도 신청하지 않았다.이 의원은 "반도체 기업의 위기는 근로 시간과 무관하다"면서 반도체 연구직에 대한 적용 예외에는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