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매일신문=최종태기자]의정갈등 장기화 상황에 독감 확산세도 심상찮아 설 연휴를 앞두고 응급실 의료진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정부가 `비상 응급 대응 기간`을 지정하고 각종 대책을 공언했지만, 현장에서는 연휴 때마다 반복되는 응급실 진료 차질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땜질식 처방이 아니라 근본적인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16일 의료계에 따르면 국내 독감(인플루엔자) 유행이 지난 2016년 이후 8년 만에 최고 수준이다. 외래환자 1000명당 독감 의심환자는 지난해 12월 1~7일 7.3명이었는데 4주 만인 12월 30일~2025년 1월 5일 99.8명으로 13.7배 불어났다.또한 12월 23~27일 전국 응급실 내원 환자는 평일 일평균 1만 8437명으로, 전주 대비 3377명 증가했다. 증가한 환자 중 41%(1357명)가 독감 환자였다. 코로나19 등 독감 외 다른 호흡기 감염병 환자도 늘고 있으며 이 같은 유행의 고비는 이번 설 연휴가 될 것으로 보인다.이에 따라 정부는 응급실 전문의 진찰료 수가 250% 가산, 후속 진료·수술 수가 200% 가산 등 기존 지원책은 유지한다면서 추가 대책을 내놨다. 우선 오는 22일부터 다음달 5일까지 2주간을 `설 명절 비상 응급 대응 기간`으로 지정, 운영할 계획이다.100개 이상의 발열 클리닉과 200개 안팎의 호흡기질환 협력병원을 재가동했고 경증 환자는 인근 병의원 이용을 권하는 등 응급실 과밀화를 방지한다는 구상이다. 환자 수용과 후속 진료 제공 등 비상진료에 기여한 정도를 평가해 의료기관에 인센티브도 지급한다.이런 정부 조치에 일선 의료진은 "문제가 될 만한 정책은 아니다"라면서도 "환자 증가세에 힘든 게 사실이다. 대형병원 응급실은 의료진 보강으로 운영이 회복되기도 하나, 중소병원 응급실은 의료진을 구하기 힘들어 운영난에 허덕이고 있다"고 토로했다.이경원 대한응급의학회 공보이사(용인세브란스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정부의 여러 지원책, 특히 전문의 진찰료 한시 인상과 인상분의 50% 이상은 직접 진료 전문의에게 보상하는 점으로 그나마 의료진이 현장에서 버티고 있으나 힘들어하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 회장(일산백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도 "임시공휴일도 지정된 만큼 연휴 기간 내원 환자가 늘 전망"이라며 "추석 때는 다행히 내원 환자가 30% 감소했지만, 현 상황은 응급의료 체계가 감당할 최고 수준이다. 이보다 더 오면 상당히 힘들다"고 했다.이형민 회장은 "전문 간호사 등 인력 배치로 대형 병원 응급실은 의정갈등 초기보다 운영 상황이 나아졌고 70%까지 회복했다. 그러나 의료진 채용에 어려움이 있는 국립대 병원, 공공병원, 지방 병원은 운영 수준이 50% 미만에 머무르는 등 양극화가 됐다"고 토로했다.일선 의료진은 신규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원활히 배출되고, 젊은 의사들이 필수의료에 다시 뛰어들 환경이 구축되지 않는 한 국내 응급의료체계가 더는 유지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에 적응해 점차 운영을 줄이거나, 의정갈등을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취지다.이경원 교수는 "국내 정치 상황에 변화가 예상되는데, 의정갈등이 어떻든 정리될 시점에 한시적 건강보험 수가 지원 등을 제도화, 상시화하지 않는다면 응급의료 상황은 매우 나빠질 것으로 깊이 우려한다"고 강조했다.조항주 대한외상학회 이사장(가톨릭대 의정부성모병원 외상외과 교수) 역시 "1년 가까이 이어진 의정갈등으로 지금 상황이 오히려 정상일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냥 그러려니 적응해 사는 모습"이라고 진단했다.조 이사장은 "외상 환자 치료에 있어서는 최종 치료가 가능한 병원으로 옮기지 않고 일반 병원이 되도록 수용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그러나 이는 환자에게 적절한 치료가 힘들 수 있고 크게 우려할 만한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