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시 함창읍 중갈리 마리산 기슭 숲속에 들어가면 `장수바위`가 장엄하게 터를 잡고 앉아 있다. 함창 중갈이 고향인 오열근 전 단국대학교 행정대학원장의 안내로 동네 뒷산인 마리산을 찾았다.
어린시절 소먹이 하던 때를 생각하던 오학장은 숲이 우거진 현장을 둘러보고 당황했다. 나무가 자라고 숲이 우거져 전후좌우를 구분할 수 없으며, 오리무중의 숲을 헤맬 수밖에 없다.
전언에 따르면 장수바위는 생김에 위용이 있고 구멍이 많이 패여있다고 한다. 거기에서 한참 올라가면 절벽에 확인하지 못한 글자가 세 개 있으며 조금 더 올라가면 암자터가 있다고 한다. 절터 옆에는 천년이 넘은 우물이 있으며, 바로 마리산 정상 밑이라고 한다. 이 산을 일러서 함창에서는 마리산이라 하고, 사벌에서는 국사봉이라 부른다. 그렇게 한참을 헤맨 끝에 숲속에서 장수가 금방 뛰쳐나오듯 장수바위가 성큼 모습을 드러냈다. 삼층으로 이뤄진 위엄을 갖춘 바위로써 아랫단은 길게 앉았는데 길이가 7m 넓이3m, 둘째단은 길이3m 넓이2m, 셋째단은 길이2m 넓이1.5m 정도이며 가운데 넓이1m 높이1m 두께1m 정도로 구멍이 뚫려있다. 둘째단 돌바닥에는 30여 개의 구멍이 드문 드문 패어져 있으며 깊은 것은 3cm에 이른다. 바위 주위는 비교적 평지로서 약간의 경사면을 이루고 있으며 많은 사람이 운집할 수 있는 공간이다. 앞쪽으로 영강과 낙동강이 만나는 퇴강이 있고, 위쪽으로는 나뭇가지 사이로 마리산 정상이 보인다. 앞산은 삼태봉으로 세 개의 봉우리가 나란히 있으며, 첫 봉우리는 문필봉으로써 붓을 닮아 좌우대칭형으로 뾰족하게 솟아있다. 추론컨데 장수바위는 제단으로서 역할을 했으며 마리산을 향해서 제사를 지냈을 것이다. 마리산, 머리산, 소머리산, 수메르산 등은 음가가 수메르에서 발생했으며, 이것을 한자로 바꾸면 우두산이 된다. 이는 고대문명과 맞닿는 언어로써 문명의 발상을 나타내는 말이다. 수메르가 중국으로 오면서 ㄹ이 탈락하면서 수미가 되고 다시 동이족으로 오면서 원래의 음가를 가지면서 소머리가 되고 한자로 바꿔 우두가 된다. 상주 화령에 소머리산이 있고, 함창에 머리메와 마리산이 각각 전해온다. 거창과 춘천을 비롯해서 전국에 우두산이 분포해 있으며, 해인사가 있는 가야산도 원래 이름은 우두산이었다. 특히 거창의 우두산은 일본천황가의 뿌리산으로 알려져 있다. 고산사 동굴이 일본 창세신화에 나오는 신들이 등장하는 곳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이렇듯 장수바위에서 올려다 보는 마리산은 예사로운 산이 아니라 태고의 권위를 부여받은 산이다. 더욱이 함창 덕통리의 옥여봉(玉輿峰)을 감안하면 이곳은 의심할 여지없이 함창고녕가야의 터전이 분명하다. 강화도 천재단이 있는 곳이 마니산이요, 함안의 아라가야 주산이 말이산이다. 함창에는 머리의 음가를 가진 산이 두 곳이나 있는 셈이다. 함창덕통리 머리메에 일곱성혈이 패인 머리메 고인돌이 있고, 중갈마리산 아래는 장수바위 고인돌제단이 있는 셈이다. 이런 류의 돌로써 오봉산 성혈석, 김해 구지봉의 구지봉석, 함안 고분에 새겨진 아라가야성혈석이 있다. 장수바위에서 직경 1km이내에 속리산에서 발원하는 영강과 태백 황지에서 내려오는 낙동강 본류가 만난다. 이 두강이 만나는 지점이 퇴강이며, 하풍진이라는 옛 나루터가 있다. 남해바다에서 올라오는 나룻배가 고녕가야 수도인 함창으로 들어오는 영강을 내려다보는 지점에 장수바위가 있다. 무지랭이 나무꾼이 보더라도 이곳은 영락없는 신앙의 소도로서 물의 신 하백에게 아뢰고, 태양신이 강림하는 마리산 산신에게 고하는 장소임이 틀림없다. 영강을 따라 2km지점에 남산고성이 있으며 그곳에 700기의 고분이 흩어져 있다. 고분군아래 대형성혈석이 있고, 맞은편에 태봉과 옥려봉이 앉아있고, 그 옆에 머리메가 있다.
또 거기서 함창읍으로 1km지점에 고로왕릉과 왕비릉이 있으며, 근처에 가야왕이 이름지었다는 대가산이 있다. 대가산아래 왕이 살았다는 왕도동이 있으며, 공검에 공갈못이 있어 물을 가둬두고 고녕가야를 말하고 있다. 바야흐로 2천년 동안 숨겨진 함창고녕가야의 퍼즐이 하나 둘 맞아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