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함창고녕가야의 역사를 찾아 천착(穿鑿)한 지도 어언 40 년이 지났다.또한 필자는 20대 초반 함창의 고로왕릉을 답사하고 나의 뇌리에는 역사속에서의 상주와 경주가 하나의 화두로 자리잡았다.서라벌과 사벌, 경주와 상주, 금척과 은척 등 여러 가지 대척점을 가지고 사색했다.신라의 양대 세력이었으며 경상도 지명의 원류이기도 한 두 도시의 역사유물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경주는 형산강을 끼고 있고 항구로는 포항보다는 울산이 국항으로서의 역할을 했다.상주는 낙동강을 기반으로 소백산맥을 병풍삼아 발전했다. 경주는 동으로 동해바다를 접하고 서쪽으로는 태백산맥을 비롯한 산악지대를 경계로 발전했다.상주를 관통하는 낙동강은 김해에서 안동까지 강줄기가 비교적 넓게 연결됐으며 고대로 활발한 교류가 있었다.풍부한 수량과 굽이굽이 형성된 평야를 바탕으로 소국들이 발전했음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그 증거로 같은 형식의 고분들이 수 만기가 낙동강 연안도시에 남아있다.그것이 가야제국이던 아니면 다른 실전한 이름의 소국이던 분명한 사실은 그러한 부족국가들이 낙동강을 따라 명멸했다는 것이다.그와 달리 경주는 서라벌을 중심으로 주위의 세력들을 하나하나 점령하면서 세력을 축적해갔다.결국 낙동강에 이르러 느슨한 관계의 소국들을 하나씩 잠식했다.그 소국들을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서 가야라고 기록하고 있다.삼국유사의 기록을 살펴보면 낙동강 상류에서부터 함창고녕가야, 성주성산가야, 고령대가야, (창녕비화가야), 함안아라가야, 김해금관가야, 고성소가야가 있다.창녕비화가야는 오가야도 아니고 육가야에도 해당하지 않는다.가락국기 찬을 언급한 뒤 고려사략을 들면서 창녕비화가야와 함창고녕가야의 가리현 소재를 소개한다.창녕비화가야를 소개하면서 고령대가야의 오기일 것 같다고 부기했다.본조사략의 고녕가야를 가리현으로 소개한 부분에 있어서 북한의 조희승 교수는 함창고녕가야가 망한 뒤 일부세력이 성주가리현으로 이주한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동아일보 천관우 기자는 이를 두고 고녕가야를 가리현으로 소개했으니 현재의 성주일 개연성이 짙다며 연구가 필요하다는 식으로 설명했다.삼국사기 지리지에는 신라시대 함창을 고녕군이라 불렀는데 이는 경덕왕때 개명한 것으로 원래는 고녕가야국에서 유래한다고 적고 있다.신라가 함락해서 고동람군이라 하고 다른 명칭으로 고릉현이라 했다고 한다.고려시대에 함녕이라 개명하고 관할지가 가은 문경 호계까지라고 한다.일제 강점기 쓰다 소키치와 나가 미치오는 총독부의 지시로 고령군 청사앞에 임나일본부라는 돌비석을 세워놓고 무수한 고분을 파헤쳤다.그들은 임나를 가야라 설정하고 가야 즉 임나가 고령 위쪽으로 전개되지 않았다고 결론을 내렸다.대신 진주를 갖다 대기도 하고 고령대가야의 고령이름을 빌려서 고령가야라고 언어술책을 벌였다.특히 이에 동조하고 두팔 걷고 나선 이가 이병도와 신석호며 해방 후 이 사림들이 한국사학계를 장악했다.겨레의 비극이 여기에서 잉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후 이뤄지는 한국사는 일제식민사학을 심화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그들과 그 후학들은 함창고녕가야를 부정하는 논리로 가야산과 멀다, 신라와 백제의 국경이니 불가하다, 대가야 유민이 피난가면서 고녕가야라는 이름을 갖다붙였다.일연이 창작했다, 유물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둥 갖은 핑계를 갖다 됐다.그저 식민지 주구(走狗)의 짖는 소리에 지나지 않는 망발을 아무런 부끄러움도 가책도 없이 내지른 것이다.홍익대 k교수와 인제대 l교수는 한 발 더 나아가 육가야 명칭이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너스레를 떤다.신라의 경덕왕이 한자식 이름을 붙이기 전 즉 고동람군 전 시대에는 한문어투의 고녕가야나 고녕군은 있을 수 없다는 괴이한 이론을 갖다 붙였다.언어학자라 하더라도 조심스럽기 그지없는 가설을 무슨 근거로 그렇게 확신에 찬 이론을 내세울까?한국인 학자로서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고녕가야역사를 지우려는 이유가 무엇인가?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그들 학맥이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에 닿아있기 때문이다.근거도 없는 임나칠국, 임나사현을 경상도 전라도에 갖다 붙이는 것에 대해서는 일언의 반론도 내지 않을뿐 아니라 그것을 정설로 학생들에게 강요하고 있다.필자는 k교수, l교수에게 정색하고 묻노니 고녕가야와 고녕군이 신라시대에 불리어지지 않았다는 합리적인 근거를 제시해주기 바란다.일본이 임나일본부 등 한국사를 축소 왜곡하는 것은 다시 한반도를 지배하려는 야욕이 있기 때문이다.중국이 동북공정을 통해 고구려사, 발해사가 중국사라고 주장하는 것은 기회가 되면 언제라도 한국을 속국으로 삼키겠다는 뜻이다.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무사가 항상 칼을 벼리는 것과 같이 우리 국토와 그에 수반한 우리 역사와 전통을 지키기 위함이다.세계사의 전환기에 한국사학자들 당신들 정체는 도대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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