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매일신문=정다원기자] 국가유산청(청장 최응천)은 `포항 용계정(浦項 龍溪亭)`을 국가지정문화유산 보물로 지정 예고하였다.`포항 용계정`은 자연경관과 조화된 조선 후기의 건축적 특징을 잘 보여주는 경상북도 포항 지역의 정자 건축물로, 1696년(용계정)에 건립되었다.`포항 용계정`은 경관을 조망할 수 있도록 조성된 2층의 누마루를 가진 정면 5칸, 측면 2칸의 ‘ㅡ’자형 팔작지붕 건축물로, 앞쪽에는 기계천이 흐르고 있다. 창건 당시에는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여강이씨 후손들의 수양공간으로 활용되었다.    이후 1778년(정조 2년)에는 정면 5칸으로 증축하였고, 1779년(정조 3년)에는 용계정 뒤편에 서원의 사당인 ‘세덕사’를 건립하면서 용계정에는 ‘연연루’라는 현판을 달아 서원의 문루 역할을 하였다.   1871년(고종 8년) 서원 철폐령 당시에는 훼철을 막고자 주변에 담장을 쌓고 다시 옛 현판을 달아 화를 면했다고 하며, 이후 여강이씨의 문중 회의 및 행사 장소로 활용되며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용계정이 위치한 덕동마을은 여강이씨 향단파의 집성촌으로, 문중과 관련된 문화유산이 함께 형성되어 있으며, 특히, 마을의 수구막이 숲으로 조성된 덕동숲은 용계정과 함께 그 가치를 이미 인정받아 2011년 8월에 국가지정자연유산인 명승 `포항 용계정과 덕동숲`으로 지정되어 있다.   국가유산청은 지정사유에 대해서 " `포항 용계정`은 2층의 누마루를 가진 정면 5칸, 측면 2칸의 ‘ㅡ’자형 팔작지붕 건물로, 농재(聾齋) 이언괄(李彦括, 1494∼1553)의 4대손인 사의당(四宜堂) 이강(李壃, 1621∼1688)이 착공하여, 그의 손자 이시중(李時中, 1667-1738)에 의하여 1696년(숙종 22년)에 완공될 당시에는 여강이씨 문중의 수양공간으로 활용된 정면3칸, 측면2칸의 정자건물이었다.   이후 1778년(정조 2년), 《사의당고적록(四宜堂考蹟錄)》에 수록된 기록에 따르면 정면 3칸을 5칸으로 증축하였다고 하며, 《사의당사실기(四宜堂事實記)》의 기록에는 1779년(정조3년)에 용계정 뒤편에 서원의 사당 역할을 하는 ‘세덕사(世德祠)’를 건립하면서 용계정의 명칭을 ‘연연루(淵淵樓)’로 변경한 것으로 보아, 이후 용계정은 세덕사(서원)의 문루 역할을 하였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던 중 1871년(고종 8년) 서원철폐령 당시, 용계정의 훼철을 막고자 건물 주변에 담장을 쌓고 옛 현판을 달아 화를 면했다고 하며, 이후 용계정은 여강이씨 문중 회의 및 행사장소로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용계정이 위치한 덕동마을은 여강이씨 향단파의 집성촌으로, 여강이씨 문중과 관련된 문화유산(오덕리 근대한옥, 오덕리 애은당 고택, 오덕리 사우정 고택 등)이 함께 형성되어 있으며, 특히 마을의 수구막이 숲으로 조성된 덕동숲(정계숲, 도송, 송계숲)은 용계정과 함께 그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지정자연유산인 명승 `포항 용계정과 덕동숲`으로 지정되어 있다.   따라서 용계정은 시대의 흐름 속에서 건물의 용도가 문중의 수양을 위한 공간에서 종합적인 용도로 건축적 공간이 확대되어 왔다고 볼 수 있으며, 이는 조선 후기 누정 건축물의 변화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용계정은 창건과 그 이후의 역사적 변화를 뒷받침할 수 있는 문헌자료가 풍부하게 남아있고, 18세기 후반 건축양식을 잘 유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덕동숲’이라는 주변 자연환경과의 조화를 이룬 정자건축으로, 국가지정문화유산(보물)로서의 가치가 충분하다고 판단된다."라고 설명했다.   국가유산청은 이번에 지정 예고한 `포항 용계정`에 대하여 30일간 의견을 수렴한 후, 문화유산위원회 심의를 거쳐 보물로 지정할 예정이며, 앞으로도 역사·문화적 가치를 지닌 문화유산을 지속적으로 발굴해 체계적으로 보호해나가는 적극행정을 실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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