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지역구 의원들은 17일 당 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박근혜)의 공천기준이 총선에서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놓고 촉각을 곤두세웠다.
비대위가 설 연휴 직후 공심위를 구성한 뒤 경쟁력과 교체지수를 절반씩 활용해 현역의원 25%를 원천적으로 공천에서 배제하도록 하면서 당장 자신이 `물갈이`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위기 의식이 높아지고 있다.
◇ 경쟁력ㆍ교체지수 "어렵다" 한 목소리 = 경쟁력과 교체지수를 통해 의원 25%를 `쳐내겠다`는 비대위의 발표에 지역구 의원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의 상황이 어렵다는 점을 토로하면서 위기감을 내비쳤다.
서울 지역의 한 의원은 "현역이 죄긴 죈가 보다. 무슨 기준을 근거로 25%라고 딱 정해서 잘라낸다는 건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안형환(서울 금천구) 의원은 "영남은 한나라당이 아무래도 강세지만 수도권은 한나라당 후보에 대한 반발이 심하다고 보이는 만큼, 타당 후보와의 경쟁력 부문에서는 수도권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다른 서울지역 의원도 "수도권에서 한나라당 고전이 불가피하다는 것은 경쟁력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자칫 수도권 의원들에게 불리한 기준이 될 수 있지 않나 하는 우려도 드는 것이 사실"이라고 공감했다.
영남 지역 의원들의 입장은 달랐다. 조원진(대구 달서병) 의원은 "대구 지역의 경우 평균 67% 정도가 현역 의원을 교체해야 한다는 여론인데, 이는 전국 최고"라면서 "경쟁력하고 교체지수는 같이 가는 만큼, 영남권 현역들도 안심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태환(경북 구미을) 의원은 "일반적으로 유권자들을 대부분 `바꾸자`는 분위기인데, 교체지수를 하나의 참고자료가 아닌 경쟁력과 똑같은 비중으로 보는 건 문제가 있다고 본다"면서 "교체지수는 참고용으로만 삼든지 아니면 그 반영 비율을 좀 줄일 필요가 있지 않느냐"고 제안했다.
박민식(부산 북강서갑) 의원은 라디오에 출연, "여론조사나 통계자료는 중요한 참고자료일 뿐이지, 전적으로 의존해서는 매우 불합리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지역구별 특색을 고려하는 맞춤형 공천이 돼야지, 여론조사에 전적으로 의존한다면 권력에 대한 의지의 충돌이라는 문제가 복잡하고 힘드니 컴퓨터에 맡기자는 태도와 비슷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 `발로 뛰는 수밖에` = 지역구 의원들은 대체로 비대위의 총선 기준에 대해 "고육지책 아니겠느냐"며 수긍하는 입장을 보이면서, `발로 뛰는 것`밖에 답이 없다는 분위기다.
조원진 의원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 같다"면서 "신인들이 예비후보로 등록하고 선거운동에 나선지 한 달인 만큼 이제는 완전히 서바이벌 게임"이라고 주장했다.
수도권 출신 핵심당직자는 "지역 여론이 굉장히 중요해 오늘도 노인정에서 자고 왔다"면서 "당직을 맡은 입장에서는 죽을 맛이지만, 낮에는 당에서 일하고 저녁에는 지역에 가서 밤늦게까지 일하는 수밖에 없다"고 의지를 다졌다.
경북의 한 의원도 "그동안 닦아온 조직도 활용하고, 스스로도 열심히 뛰어 유권자들에게 그 동안 의정활동에 대한 홍보를 강화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훈(부산 남구갑) 의원은 "설 연휴 때 재래시장 등을 포함해 지역을 10바퀴 이상 돌아야할 것 같다. 더 많은 사람을 최대한 단기간에 많이 만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 같다"고 언급했다.
◇전략공천 강남ㆍ영남권 `발등에 불` = 비대위가 전체 지역구 중 20%에 대해 전략공천을 실시키로 함에 따라 한나라당 강세 지역인 강남ㆍ영남권 의원들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비대위가 확정하지는 않았지만, 텃밭인 이들 지역에서의 전략공천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주를 이루기 때문이다. 강남을 포함한 수도권 20곳, 영남권 30곳이 전략공천 지역이 될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특히 영남권 지역구(68곳) 중 절반 정도의 전략공천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전략공천 배제`를 위한 신경전은 치열해질 전망이다.
동시에 강남ㆍ영남권 의원들 사이에서는 재공천을 받기까지 `하위 25% 공천 배제`가 이뤄질 현역 의원 평가에 이어 전략공천이라는 2개 관문을 넘어야 하는데 따른 볼멘소리도 터져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전략공천에 대한 `인식ㆍ발상의 전환`을 요구하는 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들 지역에서 `한나라당 간판`을 달면 무조건 당선이라는 인식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한 부산 지역 의원은 "한나라당 강세 지역이라는 이유만으로 엉뚱한 사람을 전략공천을 했다가는 현역 의원의 무소속 출마가 이뤄질 수 있고, 이는 결국 야당만 좋은 일 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남벨트에 속한 한 의원은 "이른바 `강남 10구`의 현역 의원 10명을 무조건 물갈이한다는 식의 접근은 문제가 있다"며 "더 좋은 사람을 배려할 수 있어도 우선 물갈이를 해놓고 추후에 적당한 사람을 데려온다는 계획만큼 졸렬한 것은 없다"고 강조했다.
영남권 한 재선 의원은 "아무 이유없이 지역을 찍어 전략공천을 한다면 납득이 안갈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북지역 한 의원은 강세지역이 아닌 취약지역에서의 전략공천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는 "한나라당 지지도가 확실하니 아무나 갖다 놓자는 식의 전략공천은 지난 폐해를 되풀이하고 주민의 뜻을 무시하는 것"이라며 "따라서 어려운 지역에서의 전략공천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갈이 규모는 =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8명을 제외한 136명 의원 중 몇명이 교체될지 관심을 모은다.
우선 현역 의원 평가에 의해 `하위 25%`인 34명이 당장 공천장을 받지 못할 전망이다.
한 핵심관계자는 "어제(16일) 비대위에서 현역 의원 평가에 의한 공천 배제율을 20% 또는 30%로 하자는 안을 놓고 의견이 갈렸다"며 "이를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25%`로 정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향후 구성될 공심위는 현역 의원 교체지수(50%)와 함께 상대당 후보 및 한나라당 예비후보들과의 지지도 여론조사에 따른 경쟁력 조사(50%)로 현역에 대한 평가를 실시한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 추려질 34명 외에도 도덕성 기준에 의한 비리연루 의원, 경선을 통한 탈락, 전략공천을 통한 공천 배제 등을 감안할 경우 재공천을 받지 못하는 의원 수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비상대책위원인 주광덕 의원은 이날 한 라디오에 출연, "실질적으로 현역 의원의 45∼50% 정도가 교체될 것"이라며 "지난 18대의 현역 의원 교체율이 39%로 가장 높았는데, 이번에는 그것보다 훨씬 높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근혜 비대위원장도 전날 출입기자단과의 오찬에서 "25%로 정했지만 끝난 것은 아니며 (25%를) 넘을 수도 있다"고 말한 바 있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