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거래`(2010),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2012), `베를린` `신세계`까지 4편의 걸출한 흥행 영화 뒤에는 이 사람이 있었다. 영화제작사 사나이픽처스의 한재덕(43) 대표다.
사나이픽처스는 창립작 `신세계`로 이름을 알린 신생 제작사지만, 영화계에서 프로듀서 한재덕의 이름은 유명하다. 그가 류승완, 윤종빈 감독과 함께한 `부당거래`(류승완), `범죄와의 전쟁…`(윤종빈) `베를린`(류승완)까지 세 작품이 흥행에 성공했을 뿐 아니라 한국영화사에서 의미 있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신세계(박훈정 감독)`가 흔치 않은 누아르 장르에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임에도 400만 관객을 넘은 것은 제작자의 지난 이력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하지만, 최근 한남동 사무실에서 만난 한 대표는 "운이 좋았을 뿐"이라며 몸을 낮췄다.
"줄을 살 섰죠. 절반 이상이 운인 것 같아요."
한 작품을 성공시키기도 어려운 영화판에서 연속 4연타의 행운이 아무에게나 찾아오지는 않는다. 비결을 묻자 그는 "무식하게 열심히 한 것밖에 없다"며 웃었다.
"되게 똑똑하고 외국에서 공부하고 오거나 영화를 전공한 분이 많아요. 성격도 부드럽고 인상 좋은 사람도 많은데, 저는 그런 게 아예 없어요. 성격 욱하고 가방끈 짧고 영화전공도 아닌 데다가 나이도 적지 않죠. 그래서 제가 더 열심히 한 것 같아요. 뭐 시키면 무식하게 해요, 제가(웃음). 잔머리 덜 굴렸고요."
영화에 발을 들이기까지 그의 인생에는 실패가 적지 않았다.
미술을 전공하려 했지만 대학에 계속 떨어진 그는 군대에 있을 때 영화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제대 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의 문을 두드리지만 세 번이나 떨어졌다.
"`나는 안 되는가 보다`라고 포기하고 일용직 일을 많이 했어요. 친구 따라 케이블 매설 작업, 컴퓨터 가게 잉크·토너 배달 등등 여러 가지 일을 했어요. 그러다 1997년에 시나리오작가교육원을 들어가서 1년 반 동안 다녔어요. 영화를 시작할 때 누구나 그렇듯 감독이 꿈이었으니까 각본 써서 감독을 하려고 했죠. 그런데 글도 잘 안 써지고 해서 `제작부 일이나 해보자` 하는 생각으로 뭐 하는지도 모르고 현장에 갔어요.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2003)에서 제작부장을 처음 했는데 집에서 쫓겨나서 사무실 한 켠의 1/3평도 안 되는 데서 살았어요."
이후 `올드보이`(2003) 제작실장을 했고 류승완 감독의 `주먹이운다`(2005)에서 정식 프로듀서가 됐다.
"제작부 있을 때에는 허드렛일 위주로 많이 했고 (장소나 사람) 섭외가 안 돼서 죽고 싶을 때도 있었어요. 또 끝나고 나면 내가 한 건데 `내 것`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근데 남들이 잘한다고 하더라고요. 부리기 좋은 성격이라고 생각했나봐요. `내 편`이라고 생각하면 있는 걸 다 퍼주는 성격이거든요. 그렇게 궁합 맞는 사람들이랑 하니까 잘 된 것 같아요."
촬영 현장에서 그는 엄격한 관리자다.
"인기 관리에 연연하지 않고 작품이 되는 게 중요하단 원칙이 있어요. 사실은 영화 하나 만드는 게 중소기업 하나가 생겼다 없어지는 거잖아요. 사교의 장이 아니거든요. 인상 쓰면서 일할 것도 아니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이 실수하면 여러 군데서 구멍이 나니까 그렇게 안 되도록 하는 거죠. 예산과 스케줄을 지켜야 한다는 게 당연한 건데, 스태프 친구들이 조금 수동적인 부분이 있어요. 노동력에 비해 경제적인 뒷받침이 안 되는 게 사실이니까요. 정말 너무너무 힘든 촬영 현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걸 보면 울컥할 때가 있는데 그렇지 못한 친구들도 있어요. 그래서 다 잘해주려고 애를 쓰지만 가끔은 무식하게 대하기도 하죠. 이제는 다들 내 스타일을 알고, 호흡맞는 친구들이랑 같이 하니까 다른 거 신경 안 쓰고 작품의 퀄리티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흥행의 공은 감독들에게 돌렸다.
"유능한 감독들과 해서 잘 된거지, (그들이) 나랑 해서 잘 된 것 같진 않아요. 흥행 감독들의 공통점이 있는데, 다들 정말 열심히 해요. 오로지 영화 생각밖에 안 하고요. 류승완, 윤종빈, 박훈정 세 감독을 보면 나이, 경력, 환경이 다 달라요. 각자 개성이 뚜렷한데, 다들 영화를 많이 보고 열심히 책을 보고 그런 공통점이 있어요. 옆에서 보고 저도 많이 배우죠."
지금까지 만든 작품들이 모두 액션 아니면 누아르에, 회사 이름까지 `사나이픽처스`니 뚜렷한 색깔이 보인다. 계속 이렇게 `상남자` 영화만 하겠다는 걸까.
"어떻게 하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폼 잡는 영화 `대부`나 액션영화들을 좋아하니까 나도 저런 영화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고요. 가리는 건 없는데, 시나리오에서 한두 가지라도 꽂히는 게 있어야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궁합이 맞는 감독들과 계속 함께 간다면 앞으로도 큰 기조에는 변함이 없을 듯하다. 다음 작품 역시 윤종빈 감독의 액션영화 `군도`다.
하정우와 강동원이 주연을 맡아 일찍부터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이 영화는 사나이픽처스가 제작하는 영화는 아니지만, 한재덕 대표가 프로듀서로 참여한다. 사나이픽처스의 다음 작품은 한 남자를 주인공으로 한 멜로영화다. `신세계`에 이어 배우 황정민이 주연을 맡았다.
"장르로서 미덕이 있는 영화를 하고 싶어요. 계속 액션영화를 하고 싶은 마음이 있고요. `밀키웨이`(조니 토 감독이 설립한 홍콩의 영화제작사)나 `골든하베스트`(1970-80년대를 풍미한 홍콩의 영화제작사)처럼 로고가 뜨는 순간 확 느낌이 오는 그런 브랜드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그리고 뭣보다 작품을 `안 쪽팔리게` 만들고 싶어요. 관객에게든, 스태프나 배우에게든. 영화를 웰메이드로 만드는 게 꿈이에요. 잘 안 되겠지만요(웃음)."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