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하늘이 맑고 해가 빛날 때방안에 앉아 있는 건 죄지요,하고 내가 말했다. 죄고 말고요, 이런 때 밖에서 바람을 쐰다는 건바로 덕을 쌓는 거지요. 하고 야오 씨가 말했다.하늘은 꼭 가을처럼 파랗습니다.해는 꼭 여름처럼 타고 있습니다. 하고 내가 말했다.허지만 날씨는 매섭습니다.몇 도 쯤이나 될는지? 하고 야오 씨가 말했다.아마 섭씨 영하 15도는 될 겁니다.보세요, 저 눈의 평원은 마치 영원의 도포자락 같군요. 하고 내가 말했다.우리나라에선 이런 설경은 볼 수가 없지요.겨울은 계절의 제왕입니다. 하고 야오씨가 말했다.이런 날씨는 바로 그 겨울의 정화입니다.해는 쓰다듬고 바람은 매질합니다. 하고 내가 말했다.바로 그런 거지요.천국과 지옥은 공존입니다. 하고 야오씨가 말했다.우리는 마치 어린애 같습니다.이런 소리 듣는 것 좋아하십니까?하고 내가 말했다. 좋구말구요. 어린아이 같다는 말 제일 좋습니다.하고 야오 씨가 말했다.야오 씨는 오십객이다.야오 씨도 나도 멀리 조국과 처자를 떠나 있는 처지이다.우리는 그 후 말없이 해와 하늘과 바람과 눈 속을 서성였다.<수필가가 본 시의 세상> 성찬경 시인은 충남 예산 출생이며 서울대 영문과에 재학시절, 1956년 조지훈의 추천으로『문학예술』을 통해 등단했고 시 동인지『60년대 사화집』을 이끄신 분이다. 야오씨는 아이오와의 국제창작회의(I.W.P)에 초청되어 만난 대만시인으로 냉랭한 겨울 아이오와 강이 흐르는 I.W.P 숙소인 메이플라워 앞 산책로에서 두 분이 나눈 대화를 성찬경 시인이 매우 담담한 어조로 쓴 시이다. 두 분은 멀리 조국과 처자를 떠나 있는 처지여서 서로 동병상련의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 대화에서 평화가 느껴지고 순수가 보이며 철학이 담겨 있음을 느낀다. 아마 눈이 많이 내렸나 보다. ‘저 눈의 평원은 마치 영원의 도포자락 같군요’ 라고 하면 ‘겨울은 계절의 제왕입니다’라고 답했으며 ‘해는 쓰다듬고 바람은 매질을 합니다’라고 하면 ‘천국과 지옥은 공존 합니다’ 라는 답변을 해 준다. ‘우리는 마치 어린애 같습니다’라고 하면 ‘어린애 같다는 말 제일 좋습니다’라고 답해주는 참으로 마음 맞는 지인을 만난 것이다. 사는 일이 팍팍해질 때마다 어린애처럼 순수하고 있는 그대로이며 꾸밈이 없는 마음을 나이가 들어서도 한결 같이 지니고 있는 사람과 만난다는 것은 행운이다. 이미 고인이 되신 성찬경 시인은 그렇게 국적이 다르지만 어린애 마음을 지닌 야오씨를 그리워하며 어린애의 마음으로 이 시를 쓰시지 않으셨을까. 이렇게 하늘이 맑고 해가 빛날 때 방안에 앉아 있는 건 죄지요, <수필가 박모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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