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고구려비의 중요성에 비춰 볼 때 때늦은 감은 있지만, 전시관이 건립돼 무척 기쁩니다"
변변한 비가림 시설조차 없었던 충주 고구려비(국보 제205호)를 보존할 전시관의 개관을 누구보다 반기는 사람이 있다.
충주 고구려비를 발견한 유창종(67ㆍ법무법인 세종 중국 본부장) 변호사. 그는 1979년 2월 청주지검 충주지청 검사 시절 충주 고구려비를 찾아냈다.
1974년 서울지검 검사로 검찰에 발을 들여놓은 뒤 서울지검 검사장과 대검 마약부장 등 요직을 두루 거친 유 변호사는 바쁜 업무 속에서도 줄곧 문화재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
충주지청으로 발령난 뒤 우연히 접한 충주 향토학자 김풍식 박사의 `중원의 향기`라는 책자에 소개된 기와 `수막새`의 파편 사진 한 장이 계기가 됐다.
이 기와에 매료되면서 문화재에 빠져든 유 변호사는 곧바로 충주 향토학자들과 문화재 연구 모임인 `예성 동호회`를 만들었다.
그후 충주지청에 근무하는 1년 동안 그는 한 번도 충주를 떠난 적이 없다. 주말마다 동호회 회원들과 문화 유적을 답사하고 기와와 관련된 책과 논문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 덕분에 충주 예성 성돌과 해골산 마애불상군을 발견하는 수확을 거뒀다.
한반도 유일의 고구려비인 충주 고구려비를 찾아낸 것은 행운이었다.
1979년 2월 24일 예성 동호회는 충주지청에서 의정부지청으로 옮긴 유 변호사를 위해 `송별 답사`에 나섰다.
가금면 탑평리 7층석탑(중앙탑ㆍ국보 6호) 부근을 답사한 뒤 기념 촬영을 하고 입석 마을을 지날 때였다.
선돌(입석)이 있어 마을 이름도 입석리로 불렸지만, 이 비석의 유래에 대해서는 마을 사람들조차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마을을 수호하는 `신성한` 비석 정도로만 여기고 있었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는데 석양이 비친 비석 한쪽에서 글자의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직감적으로 범상치 않다고 생각해 곧장 고고학자인 황수영 박사에게 연락했습니다"
국내 고고학계의 비상한 관심 속에 수차례에 정밀조사를 했다. 그 결과는 한반도 유일의 고구려비라는 것이었다.
그때까지 국내에서는 고구려비의 존재가 확인되지 않았다. 이 비석의 발견으로 고구려의 영향력이 남한강까지 뻗쳤던 것이 입증됐다.
1천300여 년의 풍상을 견뎌내며 이름없는 비석으로 남아 있던 충주 고구려비가 비로소 그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게 된 것이다.
이를 계기로 문화재 연구에 더욱 몰두하게 된 유 변호사는 1994년 순천지청장 재직 때 국보 274호인 별황자총통이 가짜임을 밝혀내기도 했다.
진짜 국보를 찾아내고 가짜 국보도 밝혀내는 별난 이력을 모두 경험한 것이다.
법무부 법무실장으로 재직하던 2002년 9월에는 20여 년 동안 전국 각지를 돌며 수집하거나 사재를 털어 사모은 유물 1천840점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당시 기증한 유물은 단일 종류의 유물로는 중앙박물관 사상 최대 규모였다.
유 변호사는 "전시관 건립을 계기로 고구려비의 중요성과 역사적 의미를 널리 알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또 충주 고구려비와 장미 산성, 해골산 마애불상군, 중앙탑, 탄금대, 남한강 일대에 산재한 문화 유적을 둘러보는 문화체험 행사나 청소년 역사탐방 프로그램 개발에도 힘써 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