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변한 게 없다. 혁명은 결코 일어난 것 같지도 않다." 지난해 2월 독재자 호스니 무바라크 축출에 따른 이집트 시민들의 환호가 채 가시지도 않은 가운데 이집트 민주화에 갈수록 암운이 짙게 깃들고 있다. 현재는 사실상 계엄상태나 마찬가지라는 지적마저 나오고 있다. 최근 암운을 드리운 결정적인 계기는 하원의원 중 3분의 1이 불법으로 당선됐다며 의회 구성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의회 해산 명령을 내린 지난 14일의 헌법재판소의 결정이다. 무바라크가 물러난 뒤 과도 정부를 이끄는 군최고위원회(SCAF)는 기다렸다는 듯 대선 결선투표가 시행된 16일 의회 해산 명령을 내리고 사전 허가 없이는 의원들이 의사당을 드나들지 못하도록 했다. 군최고위는 이어 새 의회 구성 때까지 입법권과 예산 감독권을 자신들의 권한 아래 두는 임시헌법을 발동했다고 이집트 국영언론들이 17일 보도했다. 군최고위는 또한 새 헌법을 마련할 제헌위원회 위원 100명도 1주일 내에 직접 지명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위원회는 앞으로 3개월 내에 헌법 초안을 마련하게 되고, 이후 국민투표를 통한 헌법안 승인이 이뤄지고 새 총선이 실시된다. 이로써 군으로서는 새 헌법을 통해 합법적으로 국방 및 국가안보와 같은 주요 정책에 발언권을 확보하고 국민들의 감시를 피해 자신들의 거대한 경제적 이익을 지킬 길을 열어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군최고위 측의 결정에 앞서 무슬림형제단 측의 사드 엘-카타트니 국회의장은 17일 오전 군최고위 고위 관계자를 만나 자신들은 의회 해산 명령을 인정할 수 없으며 군은 임시헌법을 발동해서도 안 된다고 요청한 바 있다. 무슬림형제단은 총선에서 자유정의당을 앞세워 제1당이 된 이집트 최대 무슬림단체로, 이들의 요청이 군으로부터 간단히 무시된 셈이다. 군은 현재 의원들의 출입을 막는 등 의사당을 완전히 차단하고 있고, 카이로 시내 상공에는 군 헬기가 나는 등 경찰과 군의 경계도 통상보다 크게 강화했다. 이에 앞서 경찰과 정보요원들이 범죄 혐의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민간인을 체포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받았고, 여기에는 교통방해와 같은 경미한 범죄도 포함됐다. 헌재의 의회 해산에 앞서 치안 강화 등의 조치가 취해진 점을 보면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일의 배후에 군이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현 상황을 보면 이집트는 실질적으로 계엄상태나 마찬가지다. 앞으로 중요한 점은 오는 21일 공식 발표될 대선 결선 투표의 승자가 군과 어떤 관계를 맺느냐 하는 점이다. 무바라크 시절 마지막 총리를 지낸 군 사령관 출신의 아흐메드 샤피크(71)가 집권할 경우 둘은 상호 협력아래 치안 확보 등에 전력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미 무슬림형제단이나 혁명 참여세력 일부에서는 이 상황이 실현될 경우 다시 거리로 나설 것임을 경고하고 있다. 또 무슬림형제단의 모하메드 모르시(61) 후보가 당선될 경우 이미 긴장관계를 보여온 군과 모르시 간에는 갈등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60년 동안 직접적으로 혹은 배후에서 이집트를 지배해온 군이 스스로 권력을 내놓기도 쉽지 않다. 상당수 국민들의 샤피크 집권시 구시대의 연장으로 생각하고, 모르시가 집권할 경우에도 이슬람국가로 변화해 많은 자유들이 속박당할 것으로 우려하는 가운데 군의 동향이 민주화의 염원을 가로막는 또다른 변수로 부상했다. 세 아이의 엄마인 아야트 마헤르(28)는 "같은 사람들이 나라를 운영하고 있고, 그들은 아직 모든 중요한 일들을 맡고 있다"고 혁명 이후에도 변화가 없는 현실에 불만을 표시하면서 뚜렷한 대안이 없다는 점에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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