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회철학자, 좀 특이하다. 공교육을 전혀 받지 않은 데다가 바다내음 가득한 캘리포니아의 부둣가를 전전하며 노동자로 일했다.
바로 20세기 위대한 미국의 사상가로 손꼽히는 에릭 호퍼(1902-1983) 이야기다.
에릭 호퍼의 저작 `부두에서 일하며 사색하며`, `우리 시대를 살아가며`, `시작과 변화를 바라보며`가 번역·출간됐다.
`부두에서 일하며 사색하며`는 호퍼가 1958년에서 1959년까지 1년간 쓴 일기를 정리한 것으로 소소한 일상생활에 녹아들어 있는 그의 사상을 엿볼 수 있다.
그는 민감한 문제에 대해서도 "인종차별이 없어진다 할지라도 흑인을 괴롭히던 병이 치유되고 이들이 불평 없이 지낼지는 미지수"(47쪽), "여성들은 상류층이나 지배계급 냄새를 풍기는 사람들 편에 설 것"(21쪽)이라고 솔직히 털어놓는다.
`우리 시대를 살아가며`는 1967년 호퍼가 잡지와 신문에 실은 글을 엮은 에세이집이다.
1960년대 세계를 휩쓴 학생운동·자동차·흑인 인권운동 등에 관한 그의 사상이 펼쳐진다.
호퍼는 차별을 받는다고 부르짖기만 할 뿐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다음 과정`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정체하는 흑인 운동에 대해서 날카롭게 비판한다.
"`난 버림받고 학대받는 어린아이에요. 나를 입양해서 그 누구보다 예뻐해 주세요.(중략) 그렇게 해주지 않으면 당신 집에 불을 질러 버리든지 문간에서 썩어가 당신이 마시는 공기를 오염시켜버릴 거에요`라고 시위하는 것 같다."(71쪽)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아 4천만 아랍인과 맞서 싸워 나라를 세운 유대인과 비교하며 그들의 배짱과 추진력을 배우라고 충고한다.
`시작과 변화를 바라보며`는 1960년대 호퍼가 잡지에 게재한 글을 모은 책으로 도시·자연·시대정신에 관한 단상들이 담겨 있다.
호퍼는 현대 문명을 악(惡)으로 단정하고 자연을 칭송하기 바쁜 지식인의 풍토를 꼬집으며 오히려 도시 안에서 자연에 맞서 싸워야만 `프로메테우스`로 거듭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뉴욕에 이르기까지 도시에서 일궈낸 인간의 위대한 문명을 상기시킨다.
상아탑에만 갇혀 사는 여느 지식인들과 달리 자연에 맞선 채 부두·사금 채취·벌목 등 노동 현장으로 직접 뛰어들었던 자신의 생생한 경험에서 우러나온 결론이다.
호퍼가 글을 남긴 지 반세기가 지났지만 인종 갈등이 종교 갈등으로, 학생 운동이 1%에 맞서는 99%의 운동으로 바뀌었을 뿐, 지금도 그가 골몰했던 주제들은 여전히 `물음표`다.
호퍼가 진단한 사회 혼란의 원인은 급격한 변화였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을 막론하고 변화는 사춘기의 성장통과 같이 고통과 혼란을 부를 수밖에 없다는 것.
역사 발전을 청소년들이 어른으로 거듭나는 과정에 비유한 그가 보기에 현대 사회는 `비행 청소년의 시대`다. 정지호 옮김. 동녘 펴냄. 각 권 144-231쪽. 1만-1만2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