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내리는 아침에/오염된 대지에 몸을 던져/비틀거리며 비틀거리며/다시 일어서는 푸른 씨앗들"(33쪽)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한 지 1년이 지났다. 부서진 집이야 다시 지으면 되고, 살아남은 사람들이야 어떻게든 살아가면 된다지만 이미 퍼질 대로 퍼진 방사성 물질은 주워담을 수 없다. 플루토늄은 반감기가 2만4천 년이라느니, 요오드와 세슘이 얼마가 검출되었다느니 하는 낯선 `수치`들은 일본과 주변 국가들 국민의 뇌리에 `공포`로 체화(體化)해 뿌리를 내렸다. 신간 `후쿠시마에서 부는 바람`은 박노해 시인 등 15명이 후쿠시마에 대해 쓴 단상을 엮은 책이다. 박노해 시인은 시 `봄비 내리는 아침에`에서 미래도 없이 희망만 움켜잡을 수밖에 없는 후쿠시마의 봄을 노래했다. 그 비에 무엇이 섞여 있을지도 알지 못한 채 그저 동토를 녹이는 봄의 선물인 것 마냥 무정히 비를 맞는 이름 없는 새싹은 피폭된 땅에서 살아야만 하는 주민들, 혹은 직·간접적 영향을 받을지 모르는 이웃 국가 사람이다. 혹자는 `군사적 이용:평화적 이용 = 히로시마·나가사키:후쿠시마`라는 관계식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저자는 군사적이든 평화적이든 간에 차이는 없다고 강조한다. 후쿠시마는 핵을 매개로 한 전 세계적 헤게모니의 파국적 결말을 상징할 뿐이라는 것. 책은 감응하는 후쿠시마, 비판하는 후쿠시마, 모색하는 후쿠시마 세 부분으로 이뤄져 있다. 1부 `감응하는 후쿠시마`에서는 원전 사고 후 고통받는 생명의 자화상을 그려냈다. 단순히 피폭 후 벌어질 무시무시한 일들을 나열하는 데서 벗어나 후쿠시마가 우리에게 던지는 문화적·사상적·정치적 화두를 던진다. "일본으로 와라. 일본은 소비사회이고 관리사회이고 대중문화사회로서 현대에서 전형적인 장소였다. 그게 부서지고 있다. (중략) 와서 그것을 겪어라. 그리고 사상적 전환점으로 삼아라. 거기서 같이 몰락하자."(56쪽) 2부 `비판하는 후쿠시마`에서는 미국의 `핵우산` 아래에서 번영을 구가한 `핵 체제`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가해진다. 핵은 단순히 무기 혹은 에너지원을 넘어 이를 떠받치는 자본이자 사회 통제이며 헤게모니다. 3부 `모색하는 후쿠시마`에서는 후쿠시마 이후 세계가 나아갈 길을 찾아본다. 한국의 용산 참사, 미국의 월가 금융위기, 일본의 후쿠시마 사고는 모두 현대 자본주의가 빚어낸 참극이라고 지적하며 끝없는 인류의 탐욕에 대해 `이제는 그만`이라고 외칠 것을 주장한다. 정치·문화·종교·경제를 넘나드는 17편의 글을 통해 `후쿠시마`로 대변되는 인류 문명에 가해지는 자기비판이 날카롭다. "원자력처럼 권력의 지배의지에 따라 특권화된 에너지에 대한 종속을 벗어나는 것, 그리하여 피폭-이미지를 삶-이미지로 역전시키는 것은 과연 불가능할까?"(147쪽)갈무리. 304쪽. 1만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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