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인터뷰 장소에 나타난 배우 김민서(28ㆍ사진)의 모습은 화사했다.
파란색 미니스커트에 순백 니트티를 차려입고 밝게 웃는 그에게서 사랑받지 못한 여인의 아픔은 찾기 힘들었다.
김민서는 화제의 드라마 MBC `해를 품은 달`에서 비운의 중전 보경을 열연했다.
그는 “분장을 안 하고 밖에 나가도 사람들이 `중전마마 맞죠?` 하고 알아본다”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지난 11일 촬영을 마칠 때까지 두 달 동안 왕 이훤(김수현 분)의 사랑을 갈구하며 가슴앓이를 하던 그였다. 쉽지 않은 역할이었던 만큼 감정 소모도 컸다.
“거의 모든 회에서 울거나 화내거나 놀라는 등 격한 감정의 연기가 많아서 감정적으로 힘들었어요. 보경이는 희로애락을 항상 최고치로 표현하는 아이기 때문에 쉽지 않았죠. 공포도 극한의 공포, 슬픔도 나락으로 떨어지는 슬픔이었어요. 모든 감정의 절정치에 다다른 인물이라 배우로서는 좋은 경험이었어요.”
시청자의 눈에는 연우와 훤 사이에 선 보경이 좋아 보일 리 없었지만 김민서는 “극이 진행되는 내내 보경이 시선에서 보게 된다”며 애틋한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훤이나 연우 입장에서 좋은 상황들이 보경이에게는 마음에 안 들고 속상한 상황들이잖아요. 합방 장면만 하더라도 저는 합방이 성사될 것 같아 속으로 `아싸, 이때야`며 좋아했거든요.(웃음)”
손을 다친 보경을 훤이 위로하는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는 이유도 비슷한 맥락이다.
김민서는 “그때 서러움과 속상함 등 북받친 감정들이 터지는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경의 진심이 통했던 순간이고 진심어린 위로를 받았던 순간이었다”라고 설명했다.
후반으로 갈수록 안정적인 연기를 펼쳤지만 초반에는 아역들과 비교를 피할 수 없었다. 그가 보기에도 아역들의 연기는 `감동적`이었다.
“부담감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부담감은 많이 내려놓고 인정할 건 인정하기로 마음먹었어요. 제가 어린 아이의 감성으로 돌아가지 않는 이상 아역들의 순수한 연기를 따라갈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반면 성인이기 때문에 표현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잖아요. 보경이를 연기하며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했던 것 같아요.”
그는 그러나 초반 보경이 진심이 아닌 행동을 할 때 그 목적이 훤의 사랑인지 권력을 얻고자 함인지 모호하게 연기한 부분이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보경이 훤이 세자라 좋아한건지 아니면 좋아한 사람이 그냥 세자인 건지 많이 고민했어요. 그러다 얻은 결론은 답을 내릴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이었어요. 그런 경계를 두지 말고 왕이자 훤인 이 사람을 열렬히 사랑하자고 마음먹었어요. 보경이 음모를 꾸민다고 해도 음모의 목적은 사랑이라고 생각했어요.”
보경이 연우가 다시 돌아왔다는 것을 직감하고 이성을 잃는 장면에서 김민서는 혼신을 다한 연기로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는 “나 또한 보경이처럼 많이 아팠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구체적인 상상을 많이 했어요. `죽은 연우의 귀신이 보경이한테 뭐라고 했을까` `아버지는 또 어떻게 보경이를 냉정하게 대할까` 이런 생각들이요. 연기에 대한 준비를 굳이 하지 않아도 계속 버림 받았다는 느낌을 받으니 점점 더 외로워지고 불안해지더라고요.”
김민서는 자신과 보경이 닮은 점으로 솔직한 성격을 꼽았다.
그는 “보경이가 가식적인 인물 같지만 들여다보면 이보다 더 솔직할 수가 없는 아이”라며 “나도 보경이처럼 감정 표현에 솔직한 편”이라고 밝혔다.
반면 다른 점으로 집요함을 들며 “보경이처럼 8년 동안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남자를 바라볼 수 있는 지구력이나 집요함은 내게 없는 것 같다”고 고개를 내저었다.
상대역 김수현과 호흡에 대해서는 “평소에 장난도 많이 치면서 재미있게 연기한 것 같다”며 “편하기 때문에 서로의 의견을 받아줄 수 있는 상대역이었다는 점에서 좋았다”고 흡족해했다. 공교롭게 김민서는 `해를 품은 달`과 `성균관 스캔들` 등 정은궐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두 편에 모두 출연했다.
`성균관 스캔들`에서 기생 초선을 연기한 그는 “두 작품 모두 모든 걸 바쳐서 사랑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라며 “치열한 사랑과 투명한 열정이 느껴져 그런 에너지를 아름답게 표현하고 싶었다”고 했다.
중학교 3학년 때 길거리에서 캐스팅돼 잡지 모델 생활을 시작한 그는 단국대 연영과에 입학한 후 2008년 안재욱, 서지혜 주연의 `사랑해`로 연기에 데뷔했다.
지난 2월에는 뒤늦게 대학교를 졸업했다. 그러나 아직 논문을 쓰지 못해 졸업장은 못 받았단다.
일단 논문을 준비해야 한다는 그는 당분간 쉬면서 몸을 추스를 생각이다.
배우로서 평소 입는 옷 같은 역할을 하고 싶은 바람도 있다. 그간 극화된 인물을 많이 연기하느라 몸에 맞춘 듯 편하게 연기할 기회가 없었다고 했다. 한 가지 바람이 더 있다면 작품 안에서 사랑받는 여인이 되는 것.
아쉽게도 그는 그간 출연한 드라마에서 사랑하는 이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전작인 KBS 드라마 `동안미녀`에서도 마찬가지.
그는 “사랑받는 역할을 해본 적이 없어서 다음 작품에서는 사랑을 많이 받고 싶다”며 웃었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