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도 숲은 그 자리에 있을 테니 `서태지`라는 이름도 영원히 남을 거에요. 그것만으로도 너무 좋아요. `지구가 기억하는 뮤지션`이 된다는 것, 멋지지 않나요?" 1990년대 가요계를 풍미한 `문화대통령` 서태지가 데뷔 20주년(3월 23일)을 맞아 팬들로부터 뜻깊은 선물을 받는다. 팬들이 십시일반으로 기금을 모아 환경오염에 훼손된 브라질 인근 열대우림에 `서태지 숲(Seotaiji Forest)`을 조성한 것. `서태지 숲`은 기획부터 모금, 실행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팬들이 직접 해낸 `순도 100%`의 팬덤 프로젝트다. 최근 청담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서태지 숲 프로젝트`의 스태프 박기연·지민정·이경미 씨는 "농담처럼 시작한 일이 현실이 될 줄 우리도 몰랐다"며 웃었다. 이들은 "`서태지 숲`은 물론 서태지 씨의 데뷔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프로젝트지만, 서태지 마니아들이 앞으로 좋은 일에 앞장서면서 더욱 발전적인 방향으로 가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세 사람에게 `서태지 숲`의 탄생 과정, 그리고 세 사람이 생각하는 뮤지션 서태지의 매력에 대해 들었다. ◇`서태지 숲`의 탄생 = `서태지 숲` 아이디어가 처음 나온 건 2009년 말. MBC TV 환경 다큐멘터리 `아마존의 눈물`이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직후였다. "서태지 씨가 추진한 `에코 프로젝트` 덕에 팬들도 한창 환경문제에 관심을 가질 때였어요. 다들 `아마존의 눈물`을 보고 충격을 받았죠. 그러다 누군가가 한 팬 사이트의 익명게시판에 `우리가 한번 숲을 만들어보는 게 어떨까`라는 글을 남겼어요. 그게 시작이었죠."(지민정) 프로젝트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박기연 씨가 `총대(총괄 책임자)`를 맡자 여기저기서 도와주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고, 순식간에 60여 명에 이르는 스태프가 꾸려졌다. "팬덤이 워낙 크다 보니 팬들이 일하는 분야(직업)도 무척 다양해요.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필요합니다`라고 게시판에 올리면 어느 순간 해결돼 있더군요."(지민정) 팬들은 논의 끝에 환경보호단체인 `월드 랜드 트러스트(WLT)`와 손잡고 브라질 인근 과피아수(Guapi Assu)` 지역에 `서태지 숲`을 조성하기로 했다. 당시 팬들이 WLT에 제시한 조건은 크게 네 가지였다고 한다. "`서태지 숲`이라는 명칭이 가능한지가 첫째였고요, 땅의 소유권 분쟁 가능성이 없어야 한다는 게 두 번째 조건이었죠. 나중에 누군가 소유권을 주장하며 벌목이라도 하면 큰일이니까요. 또 WLT에서 우리에게 피드백을 얼마나 해줄 수 있느냐도 관심거리였고요."(박기연) 왜 한국이 아닌, 지구 반대편 국가에 `서태지 숲`을 만들기로 한 것인지 궁금했다. "이 프로젝트의 목적 자체가 의심받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에요. 한국에서 했다면 서태지라는 `이름값`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관심을 보일까 걱정됐죠. 정말 조용히, 지구를 위해 일하고 싶다는 마음에 해외를 택했어요. 브라질의 열대우림은 `지구의 허파`라는 상징성도 있었고요."(박기연) `서태지 숲` 프로젝트의 당초 모금액 목표치는 2천만원이었지만, 지난해 말까지 접수된 모금액은 약 3천900만원에 달한다. 지민정 씨는 "사실 (서태지의) 공백기 때 시작된 프로젝트라 2천만원도 과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분이 동참해줬다"며 "덕분에 숲이 당초 설계 규모인 5㏊보다 확장될 것 같다"고 귀띔했다. ◇유행 따라 좋아한 서태지..이젠 우리 우상 = 지구 반대편 국가에 숲을 조성하게 할 만큼 팬들을 사로잡은 서태지만의 매력은 뭘까. "처음에는 `그냥` 좋아했죠. 사실 서태지와아이들 시절의 서태지 씨는 안 좋아하는 사람이 없었잖아요.(웃음) 일종의 유행이었죠. 근데 자라면서 저도 가치관이 생기고, 음악을 듣는 귀도 생기면서 서태지 씨 음악이 다시 들리는 거에요. `이 안에는 뭔가 철학이 있구나`란 것을 알고 나니 서태지 씨를 더욱 좋아하게 됐죠."(지민정) "서태지 씨는 제게 친구 같은 사람이에요. 청소년기에 개인적으로 무척 힘든 시간을 보냈는데 서태지 씨의 음악이 저를 잡아줬죠. `아직 우린 젊기에/괜찮은 미래가 있기에`라는 `컴 백 홈`의 가사는 제 인생을 바꾼 한 소절이기도 해요."(박기연) "서태지 씨는 제게 등대 같은 사람이었어요. 내가 가야 할 길을 알려주는. `보이는 길 밖에도 세상은 있어`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린 죽어` 같은 가사(`태지 보이스` 중)도 인상적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은퇴 기자회견 때 한 말이 가장 와 닿았어요. 서태지와 아이들의 팬답게 늘 당당하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는. 전 그 말을 지표 삼아 인생을 살아왔어요."(이경미) 서태지-이지아 커플의 결혼 및 이혼 스캔들이 터졌을 때 일종의 `배신감` 같은 걸 느끼진 않았는지 묻자 세 사람은 "오히려 미안했다"고 입을 모았다. "사실 처음에는 믿기지가 않았죠. 하지만 나중에 본인의 이야기를 듣고서 생각해보니 감정이 복잡해지더라고요. 배신감이 아니라 미안함이 밀려왔죠. `그도 사람인데, 그동안 숨기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가 그렇게 숨기고 살아야 했던 게 늘 완벽한 모습을 기대하는 우리들 때문은 아니었을까`란 마음에 무척 미안했어요."(일동) ◇"음악 계속한다는 약속만 지켜줬으면" = 서태지는 2009년 7월 나온 정규 8집 `아토모스(Atomos)`로 활동한 것을 끝으로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팬들은 데뷔 20주년을 맞는 올해에는 앨범이든 공연이든 `한방`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지만, 아직 별다른 움직임이 없는 상태다. 세 사람이 서태지에게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팬들이 가장 바라는 건 아마 공연일 거에요. 물론 저도 그렇고요. 공연장에서 서태지 씨의 음악을 즐긴 지 너무 오래됐으니까요."(지민정) "1년에 한번씩만 더 점을 찍어줬으면 좋겠어요. 서태지 씨가 팬 사이트 게시판에 글을 남기는 걸 `점 찍고 간다`고 부르는데 지금은 1년에 딱 두 번이거든요."(박기연) 하지만 역시 가장 큰 소망은 서태지가 평생 음악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얼마 전에 서태지 씨가 게시판에 글을 하나 올렸거든요. 죽을 때까지 음악을 하겠다고. 그 약속만 지켜준다면 더 바랄 게 없죠. 플러스 알파를 얘기한다면 비사이드 앨범(미발표곡을 모은 앨범)을 한번 내는 것? 그의 컴퓨터 안에는 무수히 많은 곡이 있을 텐데 어떤 곡들인지 정말 궁금해요. 하하."(지민정)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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